"우리는 바다를 마주보고 연결된 시민 해커들의 커뮤니티입니다. 시민 해커들이 서로의 문제를 듣고, 해결책을 찾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요코하마에 모인 이유입니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시 국제 평화회의장에서 열린 'Facing the Ocean(FtO)' 개회식에서 사회를 맡은 일본 시민기술 활동가 나오가 한 말이다. FtO는 한국과 일본, 대만의 시민기술단체인 코드포코리아(Code for Korea), 코드포재팬(Code for Japan), 거브제로(g0v)가 매년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 해커톤이다.
FtO는 지난 2019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처음 열린 이후로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돌아가며 열린다. 올해 FtO에는 공동개최국들 외에도 영국, 프랑스, 홍콩 등 11개국의 개발자와 디자이너, 언론인, 학자, 기획자 등 107명이 참석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청소년 후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한국과 일본, 대만의 청소년과 대학생 19명도 참석했다. FtO의 특징은 ‘경쟁 없음, 승자·패자 없음, 멘토 없음’이다. 경기를 하듯 팀별로 순위를 정하는 일반적인 해커톤과 달리 FtO에는 시상식이 없다. 이틀간의 활동으로 결과물을 내지 못하더라도 실패의 과정을 발표 주제로 삼는다.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17개의 프로젝트와 아시아 청년들의 교류 프로그램 등이 이뤄졌다. 행사 첫날에는 팀원 모집을 위한 3분 발표가 진행됐다. 아이디어 소개가 끝난 뒤 해커톤 참여자들은 라운드테이블에 모여 팀을 이뤘다. 이들은 1박 2일간 함께 먹고 자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고, 테스트와 평가를 거쳐 결과물을 완성했다. 한국과 대만, 일본 등의 참여자들이 여러 팀에 섞여 ‘TSMC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통근 지도 만들기’, ‘내가 구매한 농산물의 이력 추적하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 해커톤 ‘Facing the Ocean’ 개회식에 한국과 일본, 대만 등 11개국의 개발자와 언론인, 디자이너 등이 참석했다.
일본의 컴퓨터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마에카와 히로키 씨는 사케 양조장을 위한 시민 기술 프로젝트 ‘코드포사케(Code for SAKE)’를 기획했다. 마카에와 씨는 직장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과 IT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하며 사용하는 코딩 기술을 코드포사케에 적용했다. 사케는 일본의 전통적인 술로, 쌀을 발효시켜 만든다. 일본의 사케 양조장은 1975년 기준 5500여 곳에서 2017년에는 1500여 곳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가운데 상위 13곳의 양조장이 일본에서 판매되는 사케의 절반 이상을 만든다. 대부분의 소규모 양조장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 코드포사케 팀이 만든 웹사이트 사케피디아(Sakepedia)에서는 누구나 일본 전통주 사케에 관한 오픈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다. 사케피디아 갈무리
마에카와 씨는 지난 2018년 코드포사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엔지니어와 개발자 10여 명이 모여 사케 양조장의 위치와 사케의 종류, 근처 이자카야 등 오픈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들은 누구나 온라인에서 사케 정보를 접하고 추가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웹사이트의 이름은 사케(Sake)와 위키피디아(Wikipedia)를 합친 ‘사케피디아(Sakepedia)’로 정했다. 사케피디아에서 수집한 오픈데이터와 요리 레시피 등을 생성형 AI에 학습시켜 사케정보 AI ‘논베(Nonbei)’도 만들었다.
이번 FtO에서는 외국 술과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참가자들이 코드포사케에 모였다. 마에카와 씨는 여러 테이블을 오가며 참가자들에게 사케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코드포사케 팀원들은 사케피디아에 수집된 정보를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FtO에서 사케피디아의 한국어 번역을 맡은 연세대 사학과 1학년 조현진 씨는 “지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라 관심이 가서 합류하게 됐다”며 “팀원들이 몇 년째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업무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마카에와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코드포사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며 “지금은 사케와 지역 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사케 양조장과 사케 애호가를 연결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역의 전통주를 마시고, 자신이 좋아하는 양조장을 찾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며 “한국에서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면 주요 제조업체의 제품뿐만 아니라 지역의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사보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대만과 일본, 한국 입법부의 영상회의록 시스템. 그래픽 조벼리
대만의 시민기술단체 거브제로에서 활동하는 엔지니어 로니 왕 씨는 국회 영상시스템 비교분석 프로젝트인 ‘콩그레스 워치(Congress Watch)’를 소개했다. 한국과 대만, 일본의 입법부는 모두 영상회의록을 운영한다. 영상회의록은 입법부의 여러 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이 정부 부처 관계자들에게 질의하는 내용을 생중계하거나 녹화해서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시스템이다. 왕 씨는 프로젝트 소개 발표에서 “입법부 안에 위원회가 너무 많아서 영상을 다 보기가 힘들다”며 “한국과 일본, 대만의 영상회의록 시스템을 분석해 내용을 요약하는 채널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FtO에서 콩그레스 워치 팀에 모인 대만과 한국, 일본의 참여자들은 먼저 세 나라의 입법부 구성과 위원회 수, 영상회의록 시스템 등을 분석했다. 대만 입법원의 영상회의록 녹취록은 웹사이트에 PDF 형식으로 2~4주 후에 공개된다. 일본 국회의 영상회의록 시스템에는 녹취록이 없다. 하지만 영상을 재생할 때 의원이 발언하는 부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한국 국회의 영상회의록 시스템은 이틀 이내로 웹사이트에 녹취록을 공개한다. 또 영상을 재생할 때 사용자가 의원이 발언하는 부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 FtO에서 콩그레스 워치(Congress Watch)팀이 개발한 대만 입법원의 영상회의록 요약 채널. 로니 왕 제공
콩그레스 워치 팀은 이틀간의 해커톤에서 대만과 일본의 영상회의록 요약 채널을 개발했다. 영상회의록 시스템에 올라온 영상을 발언자별 클립 비디오로 자르고, 생성형 AI로 녹취록을 작성했다. AI를 활용해 녹취록을 요약하고, 각 의원별 요약 녹취록을 게시했다. 왕 씨는 최종 발표에서 “AI로 전 세계의 영상회의록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모든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사용자에게 친절한 페이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첫날인 16일, 기자가 팀원을 모집하기 위해 도시재생 팀을 소개하는 발표를 하고 있다. 김지유 제공
한국에서 온 청년들도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팀을 꾸렸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인도네시아 유학생 클라리사 피오나 씨도 한국인 학생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들은 도시의 재생과 복원을 위한 아카이빙 프로젝트 ‘도시재생’을 제안했다. 클라리사 씨는 3분 발표에서 “많은 도시가 인구 감소나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고, 다국적 기업이 세계로 진출하면서 도시의 모습이 비슷해지고 있다”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일은 더 중요해졌다”고 프로젝트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왼쪽은 일본 시마네현 마스다시의 아카이빙 웹사이트, 오른쪽은 도시재생 팀이 개발한 한국 소멸도시 아카이빙 웹사이트의 데모 버전이다. FtO 제공
도시재생 팀에는 한국의 대학원생과 UI디자이너, 일본의 개발자와 도시정책연구센터 직원, 대만의 상품기획자 등이 참여했다. 도시재생 문제를 기획 취재한 경험이 있는 기자도 이 팀에 참여했다. 이틀간의 해커톤에서 이들은 도시재생과 문화자원을 주제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웹사이트 설계 방향을 논의했다. 일본의 웹 개발자 카가와 유야 씨는 참고 사례로 일본 마스다시의 웹사이트를 소개했다.
동해에 접하는 시마네현 서부에 있는 마스다시는 4만여 명의 주민들이 사는 농업 도시다. 마스다시 지방정부는 지역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2018년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담은 아카이빙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웹사이트를 통해 마스다시의 일자리와 교육 등을 소개하고, 외부인의 이주지원 정책도 홍보한다.
▶ FtO에서 코드포코리아와 코드포재팬 소속 활동가들과 한국과 일본, 대만의 청년들이 활동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코드포코리아 제공
한국의 청년들은 국제 해커톤을 경험하며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오지환 씨는 코드포코리아 구성원들과의 회고 시간에 “기자, 디자이너, 사학, 사회복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이자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학생인 김지유 씨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프리카나 키르기스스탄에 갔을 때는 우리와 다른 부분이 있다 보니 새로운 점이 많았다”며 “이번 행사에서는 아시아 지역 사람들 간의 공감되는 지점이 많아서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글은 <단비뉴스> 에 보도된 8월 21일자 기사를 언론사의 허락을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출처: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