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22년에는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올해 초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 다녀왔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비행시간만 하루를 꼬박 채우는 먼 국가에는 다녀왔으나, 정작 우리나라와 가장 인접한 국가인 일본과는 접점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Facing the ocean(이하 FtO) 행사를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를 시빅 해킹의 관점에서 경험하고 싶었다.
* 국제개발협력: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와 경제·사회 개발을 지원하는 공공·민간 부문의 모든 활동
지난 8월 8일,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 지진이 발생하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8월 15일까지 대지진 주의보를 발령하였다. 우리는 8월 16일 출국 예정이었다. 온라인에서는 난카이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던 나는 문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재해 정보앱 ‘세이프티 팁’(Safety Tips)에는 1시간에 한 번씩 요코하마로 태풍이 접근하고 있다는 알림이 왔다. 지금껏 탔던 비행기 중, 이렇게 흔들림이 많았던 비행은 처음이었다. 안전하게 일본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 코드포재팬에서 제공한 재난 대비 가이드
일본의 날씨 홈페이지에는 단순히 ‘날씨’가 아닌, ‘날씨·재해’라고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사소한 지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일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FtO는 늘 우연하게도 각국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는 계기가 생긴다.’라는 오거나이저 오현 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걱정으로 가득했던 나의 마음에도 어느덧 의연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재해가 곧 일상인 곳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에 대해 짧게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코드포코리아에는 기여자 행동강령 규약(CoC)이, 그리고 FtO에는 ‘경쟁 없음, 멘토 없음, 승자/패자 없음, 정해진 주제 없음’이라는 규칙이 존재한다. 참여자로 최종 선발되고, FtO의 공식적인 첫 행사였던 OT를 통해 이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규칙을 진정으로 깨달은 시점은 바로 FtO가 종료되고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틀 내내 하나의 프로젝트에만 참여하였다. 우리 프로젝트에는 네다섯 명 정도가 오고 갔고, 최종적으로는 다섯 명이 함께 했다. 다른 팀은 어떠한 주제로 진행하고 있는지, 어떠한 의견들이 오고 가는지 궁금한 마음이 순간순간 들었다. 그렇지만 당장 다음 날 진행될 발표에서 무언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던 것 같다.
▶ 학생 참가자 대상 워크숍이 진행되는 모습
그렇기에 행사 중간에 진행되었던 학생 참가자 대상 워크숍은 내가 진정으로 FtO를 즐겼던 순간이었다. 워크숍은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세 테이블로 나뉘어 FtO와 관련된 질문을 주고받았다. 내가 속한 테이블의 질문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였다. 대다수의 대답이 ‘언어’로 통일되었고, 이러한 어려움은 그림 그리기, 바디랭귀지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도출되었다. 실제로 나 또한 영어 실력이 출중하지 않지만, FtO를 참여하는 것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이 외에도 ‘당신의 국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같은 가벼운 질문을 통해 서로의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첫날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자리를 이동하여 저녁을 함께했다. 그리고 이어진 애프터 파티에서는 일본의 전통 사케를 맛볼 수 있었다.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두 눈을 반짝이며 사케에 대해 설명하는 마에카와 씨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들뜬 분위기 속에서 가히 폭넓고 다양한 토론의 장이 형성되었다. 현재 하는 일, 앞으로의 꿈과 같은 고전적인 주제부터 각국의 외교 관계, 미디어에서 비추는 일본인의 성향과 그에 따른 오해 등 문화 간 차이에 대해서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본의 전통 사케를 소개하는 코드포사케의 마에카와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나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렇게 각국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또 있을까? 이번 2024 FtO에는 11개의 국적, 107명의 참여자가 함께했다고 한다. 각자의 다양성이 오롯하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 속에서의 안전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 FtO 종료 후, 대만의 학생 참여자들과 함께
FtO 오거나이저들이 ‘Happy Hack!’이라고 외치던 유쾌한 순간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쓰며, 다시 한번 바다 너머로 하나 될 그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이래서 어른들이 청년들보고 흐뭇해 하는지,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느낍니다. 청년들이 만들어 갈 미래는 조금 더 나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