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포사케와 함께한 2024 FtO 요코하마

Jake
발행일 2024-08-25 조회수 167
FtO

[2024 FtO 요코하마] 지역 전통주 문화를 지키기 위한 코드포사케 프로젝트

Facing the ocean(이하 FtO) 청년 프로그램에 지원했을 때 나는 FtO라는 행사에 대해서도, 코드포코리아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시빅해킹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여러 기관의 후원을 받아 일본 요코하마까지 가서 진행되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내가 선발될 리 없을 거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나이도 어리고, 시빅해킹 경험도, 코딩 능력도 없다시피 한 학생을 뽑을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FtO 청년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자로 선발됐다는 연락을 받고 매우 놀랐다.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가보는 해커톤 행사에서 제대로 된 나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요코하마로 향하는 여행은 쉽지 않았다. TV에서는 난카이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출국일은 7호 태풍이 도쿄 방향으로 접근하는 날과 정확히 겹쳐 결항되는 항공편이 속출했다. 출국시간이 불과 몇 시간만 늦었다면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도 결항됐을 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승차감은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다. 일본 현지에서는 대부분의 전철이 운영을 전면 중단하거나, 축소해 운영했다. 우리는 우여곡절을 거쳐 저녁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나리타 공항에서 요코하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번 사라진 사케 효모는 되살리기 어렵다”... 우리 막걸리와도 통하는 전통문화

이튿날인 토요일 본격적인 FtO 행사가 시작됐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나와 피칭(프로젝트 제안)을 했다. 나는 첫 번째 프로젝트인 코드포사케(Code for Sake)에 꽂혔다. 고향 친구 중 전통 막걸리 주조장을 부모님께 물려받아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제안자인 마에카와(Maekawa) 씨는 “사케는 소중한 전통문화”라며 “한번 사라진 사케 효모는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사케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막걸리를 생산하는 한국의 동네 양조장과 일본의 전통 사케 주조장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해서 흥미가 생겼다.
 
▶코드포사케의 피칭(프로젝트 제안) 보기: https://www.youtube.com/live/4pQYBeLrqqI?t=1503s
 
피칭이 끝나고 본격적인 해킹 시간이 시작됐다. 나는 곧바로 코드포사케 테이블에 합류했다. 테이블에는 코드포사케를 피칭한 일본인 프로그래머 마에카와 씨가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만에서 온 지미(Jimmy)와 홍콩에서 온 캘빈(Calvin Tsang), 코드포코리아 오거나이저인 오현 님까지 코드포사케를 지원하기 위해 모였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코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군대에서 갓 전역한 대학생임을 밝히고, 프로그래밍과 시빅해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고백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하지만 우리 테이블에 앉은 구성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나를 동등한 멤버로 대해줬다. 코드포사케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마에카와 씨는 “일본 전통주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기술은 전혀 문제될 것 없다”고 말해줬다. 이 한마디가 FtO 행사 기간 내내 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어줬다.
코드포사케 프로젝트는 ‘사케피디아(Sakepedia)’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 구성원 대다수가 일본인이었기에 사케피디아는 물론 일본어 웹사이트였다. 마에카와 씨는 사케피디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싶어했고, 여러 국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 FtO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사케피디아 첫 화면

비개발자가 협업 위해 엑셀파일 공유... 서로 배려하는 편안한 분위기

처음에는 코드를 공유하여 진행하려 했는데, 내가 코딩을 모르기 때문에 코드를 받아서 번역을 하기는 어려웠다. 멤버들은 나를 배려해 메뉴명 등 여러 단어가 들어있는 엑셀 파일을 공유해 이 파일에 번역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일본어로 된 단어와 문장들을 영어, 한국어, 대만어 등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만약 이 작업이 회사나 학교에서 하나의 과업으로서 주어졌다면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진행하니 단순한 번역 작업도 매우 즐거웠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본어의 고유한 맥락으로 인해 번역이 어려운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물어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틀 동안 사케피디아의 모든 단어를 영어, 한국어, 대만어 심지어는 마지막에 긴급 추가된 태국어까지 4개 언어로 번역 완료할 수 있었다. 마에카와 씨와 코드포사케 멤버들의 배려와 열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코드포사케 프로젝트 멤버들이 함께 작업하는 모습. 
 
코드포사케 프로젝트 작업이 너무 즐거워서, 나는 이틀간 진행된 FtO 기간 내내 다른 프로젝트에는 참여할 생각도 못하고 한 테이블에 계속 앉아있었다. 이곳의 분위기와 소통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마에카와 씨는 이 프로젝트의 초창기 멤버였다. 그동안 코드포사케 프로젝트에 기여한 백 수십 명의 멤버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마에카와 씨는 꿋꿋하게 이 프로젝트를 지켜내고 있었다. 아무런 수익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일본 전통 사케에 대한 열정 하나로 수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존경심이 생겼다.행사 내내 옆자리에서 대만어 번역을 하고있던 지미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케 이야기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국의 정치 상황, 얼마 전 전역한 군대 이야기, 각국의 전통주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주제를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낯설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우리 테이블 멤버들은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코드포사케 프로젝트가 일본을 넘어서 한국, 대만 등 바다를 맞대고 있는 여러 나라의 전통주 문화 보존 프로젝트로 발전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협력, 소통, 다양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빅해킹

 
▶사케 선생님(sake sensei)이 된 마에카와 씨.
 
마에카와 씨는 토요일 밤에 열린 애프터파티에 전통 사케를 직접 골라서 공수해 왔다. 주향이 짙고 도수도 센 사케, 아주 가볍고 스파클링 와인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사케를 맛보며 우리는 여독을 날릴 수 있었다.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협력하고, 소통하고, 다양성을 무기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FtO의 의의고 시빅해킹의 정신이었다. 일본 전통 사케를, 나아가 지역의 전통 문화를 사랑하고 보존하고 싶어하는 마에카와 씨와 코드포사케 멤버들의 열정은, 분야가 다르다며, 언어가, 전공이 다르다며 스스로를 규정하고 의기소침해있던 나의 마음을 열어주었다. FtO를 통해 배운 이 경험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관심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시빅해킹의 마음가짐을 실천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코드포사케 프로젝트 멤버들. 왼쪽부터 지미, 마에카와, 오현, 제이크, 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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