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시빅해커의 FtO 요코하마 참가기

오지환
발행일 2024-08-29 조회수 161
FtO

시빅 해킹: 시민들이 새로운 도구와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신속하고 창의적으로 협업함으로써 그들의 도시 또는 정부 시스템을 개선시켜 나가는 사회운동

시빅 해킹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때에도 나는 늘 사람들의 삶이 편해지도록 돕고 싶었다. 내가 개발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기술이 세상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몇 해 전 시도했던 ‘셔틀버스’ 프로젝트도 돌이켜보면 훌륭한 시빅 해킹 사례였다.

나의 첫 시빅 해킹: 온디맨드 셔틀버스

당시 재학 중이던 학교는 셔틀버스가 매우 불편했다.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최신 시간표를 알 방법이 없었다. 정보가 이곳 저곳에 파편화되어 있었고,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정보도 많았다. 학교는 꽤 큰 돈을 들여 셔틀버스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이 시스템에 접속할 때 로딩 시간이 10초 이상 걸렸다. 학생들은 이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았고, 결국 서비스 출시 반년 만에 서비스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셔틀버스 운행업체의 적자도 문제였다. 학생들도 요금 일부를 부담했기 때문에, 이용하는 학생 수가 늘어야 셔틀버스 업체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였다. 셔틀버스는 탑승하는 학생이 없을 때도 운행하는 등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는데, 결과적으로 학교와 버스업체 사이에 금전적 갈등이 많았다.

학생이며 셔틀버스 이용자인 내가 보기에 우리 학교 셔틀버스 시스템은 개선의 여지가 많았다. 나는 특히 금전적인 관점에서 셔틀버스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다. 적자 경영은 결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이 편하게 탈 수 있고, 버스업체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On-demand Shuttle>이라는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앱의 핵심 기능은 학생들이 원하는 탑승 시간을 선택하고, 그 시간에 셔틀버스가 운행되도록 요청하는 것이었다. 앱의 완성도가 80퍼센트 정도로 올라왔을 때, 교내에 배포를 준비중에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코로나 유행이 퍼지면서 비대면 강의 체제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셔틀버스 운행도 중단되어 아쉽게도 프로젝트는 중단했다.

이 밖에도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내가 가진 기술로 풀어보려고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문제해결자(problem-solver)인 내가 ‘시빅 해커’가 된 것도, 여러 시빅 해커들이 모이는 Facing the Ocean(이하 FtO)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FtO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행사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여러 나라의 시빅 해커들이 모여들어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많았다. 이 글에서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 일부 프로젝트를 소개하려 한다. 

wowomap

▶wowomap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토요후미(Toyofumi)

wowomap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요즘 여행자들은 여행지의 문화 행사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고 싶어 한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최신 정보와 과거 행사 정보를 섞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여행하는 기간 동안 열리는 행사만 추려보기 어렵다. 또한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동선을 짜기도 어렵다.

wowomap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여행하는 기간 동안 열리는 행사를 추려주고, 지도에 표시해 준다. 행사 유형별로 필터링해 볼 수 있고, AI 챗봇에게 질문하면 행사를 추천하거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동선을 추천해 주기도 하는 서비스다.

시빅 해킹 프로젝트 상당수는 일회성으로 끝난다. 그러나 wowomap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도 좋은 여행을 하고 싶지만 여행 계획을 세우기 귀찮아하는 사람이라서 프로젝트의 취지에 더 공감이 갔다. 내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상당수의 기능이 완성되어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개발자로서 초기 구현단계의 즐거움을 누리기는 어려웠다. 나는 서비스를 체험해 보고 UX 피드백을 전달했다.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누가 내 점심값을 올렸을까

쇼미더머니 프로젝트는 음식이 우리의 식탁까지 오기까지 유통단계를 거치며, 얼마나 비싸지는지를 알려주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이러한 유통과정을 보여주면 더 건강한 유통과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농수산물 경매가격을 공공데이터로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빠른 시간 안에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프로젝트에 몰입해 보니 작업은 예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현재 공개되는 공공데이터가 우리가 원했던 것만큼 상세하지 않았다. 경매 데이터에는 등급(특, 상, 중) 정보가 없었고, 판매 단위(한 박스당 개수 등)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농가에서 실제로 얼마에 농산물을 판매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경매 데이터는 수많은 유통과정 중 극히 일부분이었다. 이 데이터로는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웠다.

▶FtO 참가 사진. 더 많은 프로젝트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지 못해 아쉬웠다.

웹페이지를 만들어 조금이라도 동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제공되는 무선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미리 개발 환경도 세팅해 놓고, 데이터도 무제한으로 준비해 가야겠다.

구마모토 교통 개선(Kumamoto traffic improvement)

구마모토 교통 개선 프로젝트는 시내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FtO 행사 공식 후원사이기도 한 HERE라는 회사에서 참가해 진행한 프로젝트다. 한국 참가자들은 잘 몰랐지만, HERE는 일본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도 서비스를 제공해 온 회사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구마모토 시의 TSMC 통근자들을 위해 온디맨드 버스 서비스(On-demand Bus)를 제공하고 구마모토 시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에 해결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문제여서 관심이 갔다.

‘지도 서비스 개발자’라는 직업 이름을 따로 사용할 정도로, 지도 서비스 영역은 복잡하고 어려운 영역이다. 나도 지도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서 흥미가 갔지만,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돌아다니면 기존 팀원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가 돼서야 FtO는 절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행사라는 걸 깨달았다. 더 많은 프로젝트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토론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정보 환경 건강 검진(Information environment health-check)

정보 환경 건강 검진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건강한 정보 환경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거브제로 오거나이저인 치하오 씨는 여러 나라의 참가자들을 인터뷰하며 각국의 정보 환경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프로젝트는 매우 추상적이었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도 너무나 강력한 끌림을 주는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종종 "알고리즘의 노예"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처음 우리가 알고리즘을 만들 때는 내 취향이 반영되지만, 이후에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정보에 의해 사고가 편향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FtO 행사 기간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기에, 만약 하루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이 프로젝트에 질문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글을 마치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또 다들 시빅 해킹이라는 공동의 관심사가 있었기에, 주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해 볼 수 있었다. 토론은 즐거웠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덕분에 영어 실력도 조금 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FtO 행사를 회상하니 열심히 작업을 한 것보다도 즐겁게 잡담하고 놀았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특히 대만과 일본에서 온 학생 참가자들이 소심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줬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wowomap 테이블에서는 일본 친구들에게 일본 편의점 Top 10을 추천받기도 하고, 여러 편의점의 푸딩을 모아놓고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푸딩을 찾는 푸딩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다. 

▶푸딩콘테스트 사진. 세븐 일레븐 푸딩이 압도적 1등을 차지했다.

FtO 행사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행사였다. 온라인에서 글로 소통하는 것과 오프라인에서 얼굴 보며 소통하는 건 정말 정말 다르다. 오프라인 특성상 약간은 형식적인 안부 인사도 결국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고, 정을 나누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정이 프로젝트를 더 길게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 하나 이상의 시빅 해킹 프로젝트에 깊이 참여해 보는 걸 새로운 목표로 삼으며 FtO 요코하마 참가기를 마친다.

Comment (0)